Rothko on Nostr: https://www.youtube.com/watch?v=JbgwAE827Fc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와 ...
https://www.youtube.com/watch?v=JbgwAE827Fc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리레오 갈릴레이를 통해 천동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면서,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설명 하였으나 당시는 구교와 신교간의 개혁이 있던 시대였고, 성경은 해석의 여지가 있엇지만, 당시 부패할때로 부패한 구교의 행태를 고발하는 신교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했고 구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합법적 사업이었던 달력판매를 위해서 한때는 지동설의 가능성을 인정했던 구교에서도 신교에게 질수 없기에 문자주의적인 '성경'의 '신성화'를 통해 자신들의 '신권'을 강화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 '신성모독'은 그야말로 죽음을 자처하는 것이며,율법의 이름으로 마녀사냥이 자행되는 시대였음을 생각하면 목숨을 걸고 한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단을 심판하는 이면에는 신권의 강화와 율법을 통한 영향력의 행사이며 신이외의 것들은 모두 부정한 것임을 사람들에게 주입시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에 와서 우리는 과확적 근거들을 통하여 '천동설'자체가 틀렸음을 알고 있지만, 현재 천동설과 비슷한 것들이 있다. 그건 통화정책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이 주장을 첫번째로 주장한 사람은 존 메이너즈 케인즈 이지만 케인즈는 당시 세계대전을 통한 국가 수복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소비를 진작시킬 직접적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느꼇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후 사회위기와 사회의 부유를 통화정책으로 해결 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전혀 경제적/역사적/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임에도.이에 동의하고 심지어 믿으며 더불어 그런 정책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상황에 까지 놓이게 되었다.
화폐량 증가를 통해 단기적 수요증가(가수요)는 이룰수 있어도 , 인플레이션의 초래는 결국 악순환의 연속이며 통화정책을 통한 사회를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없다.사회의 부유함은 결국 수요있는 상품의 생산에 있으며, 그 과정에는 '경쟁'이 필연이다.
현대 사회에 보편적 '평등'이라는 개념은 과거의'신성모독'과 다를바 없이 권위적이며, 신성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평등' 이라는 개념이 인간대 인간의 종의 개념에서 우린 모두 평등하다는 개념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지만.결과의 '평등'이라는 주장은 우리는 더이상 무언가를 잘할필요도 없으며,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이러한 결과의'평등'은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한 개념이며 이걸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신성모독'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더 재밌는 점은 이미 이러한 상황을 이전 서구사회에서 해볼려고 했으나 무참히 실패한 선례가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고, 공짜 점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적다.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은 공짜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경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사회는 새로운 부자들이 탄생되는 시기였으며, 자발적 기부도 많이 늘어나는 시기 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을 통해 부자가 된 철강왕,철도왕,석유왕들이 독점을 통해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지만 기부와 인프라 건설에 이바지 햇던 점을 간과하지 말라,비록 그들이 청청백백하게 쌓은 부는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제도와 규제가 전혀 없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수 있엇던 이유에는 아무래도 개인의 탐욕을 어떠한 규제로 묶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빈부격차가 늘어났던 시기라고 평가를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 하지만 빈자도 부자가 될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으로 돌아와 가면 갈수록 여야의 정치인들이 사회보장제도를 수용하고 유권자에게 이행하기 어려운 복지정책을 어필하는 건 마치 시식코너의 아르바이트생들이 회사가 판매왕이 되면 돈을 더 준다는 이유아래 회사가 지원을 안해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제품으로 1+1 1+2 행사를 진행하는것과 다를바가 없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지만, 자신의 주장을 철회 하였음에도 죽을때까지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 그는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맞다고 여겨지는 가치관들이 언젠가는 무너지고 자신이 맞았다고 생각했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시대에 통화정책을 통한 시장컨트롤이 사회 안정을 이루었고 사회 전반의 부를 키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문명사회는 더 부유해지고 기술의 혁신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올렸지만, 그건 통화정책과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통화정책에 의해 노동의 가치는 쓰래기가 되어가고 있다.통화정책을 통한 위기 탈출은 그저 미래의 가치를 저당삼아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는 점.절대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며, 불평등또한 없어지지 않는다.오히려 불만을 느끼는 자들이 더 이상 부자가 될 기회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돌아와 '경쟁'을 통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네트워크가 있다. 누군가는 돈이라 부르며 누군가는 자산,또 누군가는 도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 부르고 생각하는게 다르지만 거기에는 한가지 진실이 있다. 그건 거기에 그들의 생각과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반대론자의 지칭에도 여러가지가 반영되어 있다.
'쥐약''사기''악성종양''가격이 오르지 못하면 해시가 이탈한다' .
여기에도 그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누군가는 진짜 나쁘게 생각하고 있기에 나쁜기대또한 반영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혁신적이고 이걸 그대로 받아드린다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것.
나 또한 받아드림에 있어 이렇게 사회문제를 끄집어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어찌보면 내 '희망'사항이 반영되어 있는 거라 근거가 빈약하다. 그러니 거를건 거르시고 보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지동설을 주장한 두 천문학/과학자였던 두 사람은 신학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때 성직자 ,신부가 되길 희망했던 사람들이다. 그저 찰나의 모순을 터부시하지 않고 파다보니 무언가 잘못됨을 깨닫았다는 것 뿐이다.
난 사토시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제네시스 블록만 봐도 왜 그가 비트코인을 만들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며 그 또한 그의 생각과 염원을 담았다고 본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염원을 담은 블록은 지금도 생성되고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탐욕이든, 염원에 대한 동의이든 늘어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리레오 갈릴레이를 통해 천동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면서,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설명 하였으나 당시는 구교와 신교간의 개혁이 있던 시대였고, 성경은 해석의 여지가 있엇지만, 당시 부패할때로 부패한 구교의 행태를 고발하는 신교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했고 구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합법적 사업이었던 달력판매를 위해서 한때는 지동설의 가능성을 인정했던 구교에서도 신교에게 질수 없기에 문자주의적인 '성경'의 '신성화'를 통해 자신들의 '신권'을 강화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 '신성모독'은 그야말로 죽음을 자처하는 것이며,율법의 이름으로 마녀사냥이 자행되는 시대였음을 생각하면 목숨을 걸고 한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단을 심판하는 이면에는 신권의 강화와 율법을 통한 영향력의 행사이며 신이외의 것들은 모두 부정한 것임을 사람들에게 주입시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에 와서 우리는 과확적 근거들을 통하여 '천동설'자체가 틀렸음을 알고 있지만, 현재 천동설과 비슷한 것들이 있다. 그건 통화정책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이 주장을 첫번째로 주장한 사람은 존 메이너즈 케인즈 이지만 케인즈는 당시 세계대전을 통한 국가 수복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소비를 진작시킬 직접적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느꼇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후 사회위기와 사회의 부유를 통화정책으로 해결 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전혀 경제적/역사적/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임에도.이에 동의하고 심지어 믿으며 더불어 그런 정책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상황에 까지 놓이게 되었다.
화폐량 증가를 통해 단기적 수요증가(가수요)는 이룰수 있어도 , 인플레이션의 초래는 결국 악순환의 연속이며 통화정책을 통한 사회를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없다.사회의 부유함은 결국 수요있는 상품의 생산에 있으며, 그 과정에는 '경쟁'이 필연이다.
현대 사회에 보편적 '평등'이라는 개념은 과거의'신성모독'과 다를바 없이 권위적이며, 신성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평등' 이라는 개념이 인간대 인간의 종의 개념에서 우린 모두 평등하다는 개념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지만.결과의 '평등'이라는 주장은 우리는 더이상 무언가를 잘할필요도 없으며,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이러한 결과의'평등'은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한 개념이며 이걸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신성모독'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더 재밌는 점은 이미 이러한 상황을 이전 서구사회에서 해볼려고 했으나 무참히 실패한 선례가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고, 공짜 점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적다.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은 공짜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경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사회는 새로운 부자들이 탄생되는 시기였으며, 자발적 기부도 많이 늘어나는 시기 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을 통해 부자가 된 철강왕,철도왕,석유왕들이 독점을 통해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지만 기부와 인프라 건설에 이바지 햇던 점을 간과하지 말라,비록 그들이 청청백백하게 쌓은 부는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제도와 규제가 전혀 없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수 있엇던 이유에는 아무래도 개인의 탐욕을 어떠한 규제로 묶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빈부격차가 늘어났던 시기라고 평가를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 하지만 빈자도 부자가 될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으로 돌아와 가면 갈수록 여야의 정치인들이 사회보장제도를 수용하고 유권자에게 이행하기 어려운 복지정책을 어필하는 건 마치 시식코너의 아르바이트생들이 회사가 판매왕이 되면 돈을 더 준다는 이유아래 회사가 지원을 안해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제품으로 1+1 1+2 행사를 진행하는것과 다를바가 없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지만, 자신의 주장을 철회 하였음에도 죽을때까지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 그는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맞다고 여겨지는 가치관들이 언젠가는 무너지고 자신이 맞았다고 생각했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시대에 통화정책을 통한 시장컨트롤이 사회 안정을 이루었고 사회 전반의 부를 키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문명사회는 더 부유해지고 기술의 혁신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올렸지만, 그건 통화정책과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통화정책에 의해 노동의 가치는 쓰래기가 되어가고 있다.통화정책을 통한 위기 탈출은 그저 미래의 가치를 저당삼아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는 점.절대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며, 불평등또한 없어지지 않는다.오히려 불만을 느끼는 자들이 더 이상 부자가 될 기회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돌아와 '경쟁'을 통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네트워크가 있다. 누군가는 돈이라 부르며 누군가는 자산,또 누군가는 도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 부르고 생각하는게 다르지만 거기에는 한가지 진실이 있다. 그건 거기에 그들의 생각과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반대론자의 지칭에도 여러가지가 반영되어 있다.
'쥐약''사기''악성종양''가격이 오르지 못하면 해시가 이탈한다' .
여기에도 그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누군가는 진짜 나쁘게 생각하고 있기에 나쁜기대또한 반영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혁신적이고 이걸 그대로 받아드린다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것.
나 또한 받아드림에 있어 이렇게 사회문제를 끄집어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어찌보면 내 '희망'사항이 반영되어 있는 거라 근거가 빈약하다. 그러니 거를건 거르시고 보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지동설을 주장한 두 천문학/과학자였던 두 사람은 신학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때 성직자 ,신부가 되길 희망했던 사람들이다. 그저 찰나의 모순을 터부시하지 않고 파다보니 무언가 잘못됨을 깨닫았다는 것 뿐이다.
난 사토시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제네시스 블록만 봐도 왜 그가 비트코인을 만들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며 그 또한 그의 생각과 염원을 담았다고 본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염원을 담은 블록은 지금도 생성되고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탐욕이든, 염원에 대한 동의이든 늘어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